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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악보

판소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로부터 판소리도 악보가 있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특히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나, 판소리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이를 쉽게 널리 보급해서 누구나 한 곡조쯤 부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물론 판소리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질문을 받으면 한참을 망설이게 된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대개 음악은 마땅히 악보가 있어야 하는 것이며, 악보가 없는 음악은 모자란 음악이거나, 예술성이 부족한 음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임을 설명하지 않고, 그냥 악보가 없다고 하면 틀림없이 판소리를 저급한 음악, 저급한 예술로 생각해 버릴까 싶어서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 판소리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다. 악보가 없는 음악은 '구두전승되는 음악'이다. 그래서 저급하다거나, 미발달 상태에 있거나 한 것이 아니고, 바로 그 점 때문에 판소리는 판소리다운 특성을 지닌다. 이제 그 이유를 알아보자.

악보를 중심으로 보면, 이 세상에는 악보가 있는 음악과 악보가 없는 음악의 두 종류가 있다. 악보가 있는 음악을 예술음악이라고 하고, 악보가 없는 음악을 민속음악이라고 한다. 동양에는 악보가 없는 음악만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기 쉬우나, 동양에도 악보가 있는 음악이 많이 있다. 악보가 있는 동양음악을 동양의 예술음악이라고 한다. 동양의 음악 중에서도 궁중에서 연주되었던 음악은 악보가 다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악보가 없는 음악이 더 많다고 한다. 생각해 보자. 아프리카 지역의 전통음악, 인도의 전통음악, 그리고 아직도 부족사회적인 전통을 지니고 있는 수많은 지역의 음악들이 악보가 없으니, 그 수가 많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보아도 음악을 악보에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은 아니므로, 역사상에 존재했던 수많은 음악들이 악보가 없었을 것이다.

악보는 음악을 기록하는 수단일 뿐이다. 그것도 아주 불완전한 수단이다. 우리는 흔히 악보, 특히 서양에서 개발된 오선보가 음악의 모든 것을 기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실상은 그렇지가 못하다. 만약에 오선보가 음악의 모든 것을 다 기록할 수 있다면, 연주가의 우열은 작가가 악보에 기록한 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생해 내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리고 요즘에 개발된 컴퓨터로 연주를 시킨다면 인간은 도저히 컴퓨터의 정확성을 따라잡지 못할 것이다. 악보에 기록할 수 있는 음악의 내용은 전체 음악의 극히 일부분이어서 악보에 기록할 수 없는 내용이 훨씬 더 많다고 한다. 연주가는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을 자기 나름대로 창조해서 연주한다. 그래서 연주가도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연주가가 되고자하는 사람이 비싼 돈을 들여가며 훌륭한 연주가에게 개인 교습을 받는 이유도 바로 악보에 기록되지 않은 것, 훌륭한 연주가가 창조해낸 것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악보의 유무는 창작과 전파, 그리고 음악이 존재하는 방식의 차이를 유발할 뿐이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악보가 있는 음악에서는 악보에 의해 이루어지는 반면에, 악보가 없는 음악은 인간의 기억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차이에 의해 두 음악의 특성이 달라진다. 가령 서양 고전음악에서와 같은 화음은 악보가 없는 음악에서는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대규모 관현악 편성에 의한 연주에도 어려움이 있다. 악기마다 개인마다 다른 선율을 연주할 수밖에 없겠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음악이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습과 규범이 적용되면 된다. 예컨대 시나위같은 음악이 그렇다. 시나위 연주에서는 여러 가지의 악기가 동원되면서도 장단만 같을 뿐 각기 다른 선율을 연주한다. 그러면서도 여러 가지 종류의 악기 소리가 조화되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이를 '부조화의 조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요컨대 '조화'라는 의미가 서양 음악에서와는 다른 기준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음악학자(Jhon Blacking)는 악보에 지나치게 의지하는 음악적 관습이 음악에 재능이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왔다고 주장한다. 인간 모두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재능을, 악보를 기록하고 읽을 수 있는 소수만이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는 것이다. 또 악보가 있는 음악이라고 할지라도 많은 부분을 구전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음악은 본질적으로 민속음악이라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알고 있거나 부를 수 있는 대부분의 음악을, 우리는 악보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전에 의해, 곧 귀로 듣고 배우는 방식으로 익혔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앞에서 개인 교습의 예를 들었지만, 이 또한 구두전승의 좋은 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악보는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다. 악보가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장점을 깡그리 무시하자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우리가 갖고 있는 악보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교정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판소리가 악보를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은 약점이라고 할 수 없다. 판소리는 악보가 없기 때문에 비로소 판소리일 수 있다. 우리는 늘 판소리의 악보화가 판소리의 발전에 절대적인 것처럼 생각해 왔다. 실제로 판소리를 오선보로 채보한 것도 상당수 있고, 또 요즈음에는 새로운 국악 창작곡을 쓰거나 연주할 때 오선보를 사용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의 음악 활동이 악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판소리를 악보화하면 다소 편리한 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되면 손상되는 부분도 생긴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민속음악과 관련해서 더 들 수 있는 것은 계층적 성격과 집단적 성격이다. 민속음악은 비록 뚜렷하게 구분되어 대립하고 있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조직화되어 그 위의 계층과 거리를 두고 생활하고 있는 사회적 하층 계급으로부터 나온다.
그러므로 민속음악은 사회가 복잡해져서 어느 정도 계층이 나누어지고, 그에 따라 음악에도 구별이 생긴 경우에만 대립적으로 쓰는 용어이다. 만약 어떤 사회의 구성원 전체가 이런 계층의 구별 없이 동질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민속음악이란 용어는 필요 없게 된다. 그런 사회의 음악은 민속음악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특별히 민속음악이라고 할 때는, 우리의 음악문화에 이러한 계층적 대립이 존재하고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곧 양반 사대부들의 음악인 '정악(正樂)'에 대한 민속음악의 대립이 그것이다.

민속음악의 집단적 성격이라고 하는 것은, 예술음악이 어떤 뛰어난 개인에 의해 만들어지는 데 반해서, 민속음악은 이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의 공동 노력에 의해 만들어지기 때문에 우러나오는 특성이다. 민속음악은 구전되는 과정에서 갈고닦여져 남은 것이다. 따라서 구전 과정에 참여한 수많은 사람의 공동 창작품이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경우 작자를 알 수 없으며, 예술음악에서 천재성의 징표로 내세우는 개성이라는 것도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민속음악 속에는 민중이라는 집단의 정서와 가치가 담겨지게 된다. 우리가 판소리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바로 집단의 정서와 가치이다. 판소리를 진정한 의미에서 민족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러한 성격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민속음악은 계속성, 변이, 사회에 의한 선택이라고 하는 세 가지 본질적 속성을 갖는다. 그러면 민속음악의 세 가지 속성을 판소리와 관련해서 차근차근 알아보도록 한다.
민속음악에서 계속성(continuity)이라고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지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알 수 없는 어느 시점으로부터 계속 이어온 특성을 가리킨다. 어떤 경우에는 음악이 생겨난 시점을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은 대강의 시점마저도 알 수가 없다.
민속음악은 구두전승 예술이기 때문에 기록이 존재하지 않아서 기록된 역사는 없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계속 이어져 온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민속음악은 오랜 세월에 걸친 전승의 결과물이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이 과거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오랜 세월에 걸 쳐 이어져 내려온 이상 변하지 않고 계속되는 측면이 있을 것이라는 점만은 부정할 수 없다. 민속음악의 이러한 점이 전통성을 유지하며,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켜 준다.

판소리에서 계속성의 측면을 가리키는 용어에는 '제'와 '바디'가 있다. '제'는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지만, 가장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전승 계보를 가리킨다. '바디'는 '받다'에서 나온 말로 생각되는데, 역시 전승 계보와 관련하여 쓰이는 용어이다. 다만 '제'에 비해 '바디'는 좁은 범위로 한정되어 있어, '제' 속에 여러 가지의 '바디'가 존재하는 양상으로 이해된다. 그래서 이들은 종종 나무 가지와 같은 계통도로 표시되기도 한다.

변이(variation)란 개인 혹은 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식적 무의식적 변화를 말한다. 민속음악의 창자는 저마다 대체로 배운 대로 노래를 되풀이할 것이다. 그러나 민속음악 작품은 기록되어 확정된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흠집 투성이인 인간의 기억 속에 존재한다. 따라서 더러는 망각되기도 하고, 잘못 기억하여 틀려지기도 한다. 이러는 가운데 조금씩 무의식적인 변형을 입는다. 악보가 있다면 악보에 구속되어 이러한 변형을 일으킬 수 없다. 민속음악의 변이는 구두전승성이라고 하는 민속음악의 본질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런 만큼 피할 수 없는 운명과 같은 것이다.

변이에서 참으로 중요한 것은, 창조적인 음악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변이이다. 창조적인 음악가는 자신이 배운 대로하기보다는, 이를 더 나은 형태로 바꾸고자 한다. 부단히 보다 더 나은 형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진다. 근세의 최고 명창으로 일컬어지는 임방울(1904-1961)은 본래 천성의 좋은 성대를 지니고 태어났지만, 꾸준히 보다 더 좋은 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증언에 의하면, 임방울은 평상시에도 늘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한다. 그렇게 하면서 만족할 만한 형태가 나올 때까지 고치고, 또 고치고 했다. 임방울이 대명창이 되어 오래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이유는, 바로 이러한 노력을 통해 청중들의 기호와 감성에 맞는 훌륭한 변이형을 창조해 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민속음악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창조성이 보태진다. 또 여러 가지 변이형이 존재하게 되어 다양한 이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민속음악에서 창조성이 발휘되는 방식이다. 그러기 때문에 본래는 같은 스승으로부터 똑같이 배운 동일한 작품이라고 할지라도, 부르는 사람마다 조금씩의 차이를 보이게 된다. 그 차이가 일반이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면, 다른 바디로 설정된다. 그래서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사람들의 소리 중에서도 어떤 사람의 소리는 스승과 같은 바디에 속하는데, 어떤 사람의 소리는 바디를 따로 설정한다.

민속음악은 언제나 수많은 변이를 거친 최종적 결과로만 나타나기 때문에, 원본이니, 정본이니 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형태나 똑같이 그 자체로 충분히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틀렸다거나 잘 못 된 것은 없다. 서로 다른 것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민속음악이 기반으로 삼고 있는 민중의 창조성의 다양함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약점이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보면, 최근 판소리에서 배운 대로 부르려는 경향이 강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일임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가르쳐준 대로, 혹은 배운 대로 부르지 않는다든지, 부를 때마다 다르게 부르면 안 되는 것처럼 생각하기도 하는데, 이도 또한 판소리의 본질에 대한 무지의 소치일 뿐이다.

민속음악의 생명이 긴 것은 바로 이 변이를 통해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는 청중들의 기호와 감성을 따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약 300여 년에 걸친 역사를 지니고 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판소리가 변함없이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변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새로운 생명력을 꾸준히 공급받아 왔기 때문이다. 변이는 바로 민속음악이 창조성을 발휘하는 수단이며, 새로운 생명력의 공급원인 것이다.

판소리에서 변이를 가리키는 말로는 '더늠'이라는 것이 있다. '더늠'은 '더 넣다'에서 온 말인 듯한데, 이는 판소리에서 특별히 좋은 부분, 혹은 어느 소리꾼이 특별히 잘 부르는 대목이나, 작품을 가리킨다. 예컨대, '[쑥대머리]는 임방울의 더늠이다', 혹은 '[제비노정기]는 김창환의 더늠이다'라고 했을 때는, 임방울이나 김창환(1854-1927)이 특별히 멋있게 고쳐 불러서 인기를 얻은 대목이 [쑥대머리]나 [제비노정기]라는 뜻이다. 또 '임방울의 더늠은 [적벽가]이다'라고 할 때는, 임방울은 [적벽가]를 특별히 멋있게 잘 부른다는 말이다.

판소리에는 수많은 더늠이 존재한다. 판소리사에 이름 올라있는 소리꾼은 모두 한두 대목 이상의 더늠을 갖고 있다. 판소리는 이러한 더늠이 쌓여서 이루어졌다. 판소리는 결국 더늠의 예술인 것이다. 소리꾼도 더늠이 많을수록 훌륭한 소리꾼이다. 더늠을 통해서, 곧 변이를 통해서 소리꾼은 자신의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판소리는 본래 열두 바탕이었다가, 20세기로 넘어오는 시기에 일곱 바탕이 전승에서 탈락하고 다섯 바탕만이 남게 되었는데, 이렇게 된 데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결과적으로는 민중이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까지 인기가 있어 음반으로도 다수 제작되었던 중고제 판소리도 민중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사라졌다.

이렇게 민속음악은 사회에 의해 선택되어야 살아남기 때문에, 자연히 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정서와 기호를 반영하는 것만이 선택된다. 따라서 민속음악에는 개성이 녹아 없어지고, 집단의 기호와 정서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사회 구성원인 인간의 감성과 기호는 고정된 채로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 조건이 변함에 따라 당연히 인간의 기호와 감성도 변하게 된다. 변하는 기호와 감성은 민속음악의 변화를 유도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창조적인 소리꾼은 사회 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을 이끌어나가는 선도적인 역할도 한다.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정정렬(1876-1938)은 흔히 '30년 앞을 내다보고 소리를 했다'고 일컬어지는데, 이는 정정렬이 사회의 기호와 감성을 따라가기만 하는 소리꾼이 아니라, 사회의 감성과 기호를 이끌어나가는 미래지향적 소리꾼이었음을 뜻한다.

정정렬이 활동했던 당시에 그는 이미 동년배의 소리꾼인 송만갑(1865-1939) 등으로부터 '신식 소리꾼'이라는 말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현대 판소리의 전개 방향이 정정렬이 이미 1930년대에 추구했던 방향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

현대 판소리는 과거에 비해 침체를 면치 못하고 있는데, 이도 또한 결과적으로는 사회 구성원의 기호와 감성의 빠른 변화를 판소리가 따라가지 못해서 생긴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민속음악은 가장 민주적인 예술임을 알 수 있다. 항상 다수에 의해 생존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악 유산 중에는 비민주적인 유산도 많이 있다. 현재 중요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는 [종묘제례악]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종묘에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의식음악이다. 그러므로 [종묘제례악]은 봉건 체제의 체제 유지 수단의 하나였을 뿐만 아니라, 봉건 국가의 재정과 제도의 뒷받침에 의해 유지되고 전승되었다.

이러한 예술은 아무래도 민주적인 예술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전통 예술이라는 의미 외에,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예술인가하는 물음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판소리는 민주적인 예술이기 때문에,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예술이라고 할 수 있다. 판소리를 보존하고 발전시켜야 할 진정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