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 판소리 하지만, 판소리가 무슨 뜻인지, 그리고 판소리를 판소리로 부르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아니 대부분은 판소리라는 말 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조차 없다. 마치 우리가 늘 쌀을 먹고 살지만, 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언어학에서는 특수한 소수의 예를 제외하고는, 어떤 것을 무엇이라고 이름붙이는 특별한 이유나 원칙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기본적인 낱말이 그런 것이며, 나중에 새롭게 이런저런 말조각을 연결해서 만들 때에는 그렇지가 않다. 이름을 붙일 때는 이름붙여지는 대상에 대한 생각이 이름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이름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이름에는 그 이름을 지어준 부모님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판소리라는 명칭은 판소리가 생길 때부터 붙여진 이름은 아니었다. 판소리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기 이전에는 타령, 창, 잡가, 소리, 광대소리, 창악(唱樂), 극가(劇歌), 가곡(歌曲), 창극조(唱劇調) 등의 명칭이 사용되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는지 자세히 알 길은 없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문헌은, 김제 만경 출신으로 해방 직후 월북한 정노식이라는 사람이 1940년에 조선일보사 출판부에서 낸 {조선창극사}라는 책이다. 그러니까 판소리라는 명칭은 그보다 조금 일찍 생겨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판소리라는 말을 그렇게 자주 쓰지는 않았다. 우선 책 제목에서부터 {조선판소리사}라고 하지 않고, {조선창극사}라고 함으로써, '창극'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때만 해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판소리라는 명칭이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해방 후라고 한다. 연세가 높은 판소리 애호가나 명창들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었다. 그런데 판소리가 생겨난 지 200년도 더 지난 다음에야 생긴 이름이 이제는 아주 널리 쓰이게 되고, 다른 명칭은 거의 쓰이지 않게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 아무래도 판소리라는 명칭이 다른 명칭보다 훨씬 더 판소리의 특징을 잘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바로 판소리라는 명칭이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며,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것을 연구할 때 으례껏 먼저 어원을 찾아 보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판소리'라는 말은 '판'과 '소리'라는 낱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그러면 먼저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 알아보자. '판'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노름판', '씨름판', '굿판' 등에서와 같은 의미. 노름판이나 씨름판, 굿판은 노름이나 씨름, 굿이 벌어지는 장소를 뜻한다. 그리고 '판'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기 마련이다. 혼자서 어떤 일을 벌이는 장소에는 '판'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다. 그리고 좀 특별한 행위에만 '판'을 붙인다. 그래서 '판'이 붙을 수 있는 말이 많지는 않다. 그렇다면 여기서 '판'이라는 말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모인 가운데 특수한 행위가 벌어지는 장소'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둘째, '씨름 한 판', '바둑 두 판' 등에서 쓰인 것과 같은 의미. 이 때 '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의미한다. 그러니 대개 승패를 가르는 일의 경우에는 승패가 완전히 결판나는 결과에 이르렀을 때만 '판'을 사용할 수 있다.
셋째, '판놀음', '판굿'에서와 같은 의미. 판놀음이나 판굿은 조선조 말 전문 유랑인 집단들이 벌이던 놀이를 가리킨다. 이들은 전문적인 연예인들로 조직되어, 유랑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놀이를 벌이고, 구경꾼들로부터 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그러므로 이 때의 '판'이란 전문인들이 벌이는 놀이나 행위를 가리킨다.
이렇듯 '판'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판'을 첫 번째의 경우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하는 소리'라는 뜻이 될 것이다. 놀이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구경꾼과 행위자가 구분이 안 되는 놀이, 즉 놀이를 하는 사람만이 있지 따로 구경꾼이 없는 경우도 있고, 하는 사람과 구경꾼이 구별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이 모인 장소란 당연히 구경꾼이 많이 모인 장소가 될 것이다. 구경꾼을 많이 모아놓고 벌이는 놀이가 바로 공연예술이다. 그러니까 첫 번째 의미 속에는 판소리가 공연예술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하겠다.
두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한 과정을 이야기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플롯에서의 이른바 '전체'라는 개념과 같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말하기를, "전체는 처음과 중간과 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처음은 그 자신 앞에는 아무 것도 없고,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존재하거나 생성하는 성질의 것이다.
끝은 이와 반대로 그 자신 필연적으로, 혹은 대개 다른 것 다음에 오나, 그것 다음에는 아무런 다른 것이 오지 않는 성질의 것이다. 중간은 그 자신 다른 것 다음에 오고, 또 그것 다음에 다른 것이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 구성된 플롯은 아무 데서나 시작하거나 끝나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판소리는 시작과 중간과 끝이 있는 이야기를 노래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세 번째와 같은 것으로 보면, 판소리는 '전문인들이 하는 소리'가 될 것이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통해 전문적인 기능을 습득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소리라는 말이다. 판소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판소리를 직접 부르고 싶어 못 견디는 사람들이 많다. 아닌 게 아니라, 좋다보면 듣는 것으로 만족할 수 없다. 어떻게든 자기도 불러보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다. 판소리는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전문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서커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서커스를 직접 할 수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문적인 예술은 전문적인 예술가만이 할 수 있고, 일반인은 그저 보거나 듣는 데 만족해야 한다. 보거나 듣는 일이 쉽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제대로 보고 들으려면 전문가에 가까운 식견과 감성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래서 잘 들을 줄 아는 사람을 '귀명창'이라고 부른다. '귀명창'과 '명창'을 이렇듯 용어로 구분했다는 것은, 판소리 청중들이 판소리가 전문적인 예술이었음을 일찍부터 깨닫고 있었다는 증거가 된다.
'판소리'에서 '판'은 어떤 의미로 보아야 할까. 위에 들고 있는 세 가지 모두의 의미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세 가지 의미가 모두 판소리에 타당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리'란 무슨 의미일까? '노래'가 서정적이고 짧은 것을 가리키는 데 비해, '소리'는 서사적인, 즉 이야기를 지닌 긴 노래를 가리킨다고 하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남도 민요나 서도 민요를 '남도 소리', '서도 소리' 한다든가, 들노래들도 '김매는 소리', '달구질 소리' 등으로 부르는 것을 보면 별로 타당성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소리'의 사전적 의미는 "귀에 들리는 공기나 물체의 빠른 진동"이다. '소리'는 청각으로 우리가 받아들이는 모든 현상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판소리의 '소리'에 관한 해석으로는 적절하지 않다. 어떤 사람은 판소리를 특별히 '소리'라고 한 것은 판소리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래 음악은 자연의 온갖 소리를 다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판소리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에 지나지 않는다.
판소리의 '소리'는 '목소리'의 준말이라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을 듯하다. 음악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사용하는 분야는 성악이다. 그렇다면 판소리의 '소리'는 판소리가 성악의 일종이라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목소리는 인간의 육체의 일부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만큼 인간적인 표현에 뛰어나다. 음악에서 성악을 제일로 친다거나, 인간의 성대를 가장 훌륭한 악기라고 하는 이유는, 인간의 목소리가 악기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보다 아름답다거나 정확해서가 아니라, 인간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의 목소리가 다른 악기보다 뛰어난 이유는,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고 사용해온 역사가 깊어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으며, 다른 악기에 비해 유연해서 표현의 범위가 넓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겠으나, 궁극적으로는 인간적인 데 있다고 할 것이다. 인간에게 인간보다 소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 이렇게 볼 때 판소리가 인간의 목소리를 표현의 재료로 삼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사실을 명칭을 통해서 강조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점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