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소리는 성악의 일종이다. 그러니까 당연히 목소리 자체의 음악성이 중요하게 생각된다. 그래서 '판소리는 성음놀음'이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성음놀음'이란 성음을 가지고 그 미감을 즐기는 것이라는 뜻이겠다. '성음(聲音)'이란 무엇인가. '성음'이란 목소리이다. 목소리를 가지고 즐긴다는 말은 목소리의 질, 곧 목소리의 음질(音質)을 즐긴다는 뜻이다. 그러면 판소리에서는 어떤 음질을 좋다고 하는가.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목소리는 일단 보통의 소리가 아니라, 목쉰 소리이다. 그렇지만 같은 거칠고 탁한 목쉰 소리라고 할지라도, 이를 다시 크게 수리성과 천구성의 두 가지로 나눈다. 수리성은 좀더 탁하고 거친 소리를 말하고, 천구성은 보다 맑고 깨끗한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는 상대적인 개념일 뿐이다.

판소리가 기본적으로 목 쉰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서양의 성악과는 확연히 다른 미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판소리를 시작하려는 사람은 우선 맑은 목소리를 거칠고 탁하게 만드는 일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이 일이 판소리 수련에서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가 된다.

맑고 깨끗한 목소리를 거칠고 탁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성대를 무리하게 사용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성대를 무리하게 써서 목이 붓게 하고, 그 부은 목에 계속 무리를 가해서 마침내 터져 흉터 투성이로 만드는 것이다. 이 과정은 오랜 시간과 그야말로 초인적인 노력이 수반되는 어려운 과정이다. 판소리 창자가 되기 위해 수련에 임하는 사람이 그런대로 들을 만한 소리를 하기까지에도 몇 년이 걸리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정상적인 목소리를 비정상적인 목소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하루 이틀, 혹은 몇 달 동안의 시간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판소리에서 요구되는 소리가 일차적으로 거친 소리라고 해서 무조건하고 거칠고 탁하기만 한 소리면 된다는 말은 아니다. 너무 거칠기만 하면 '떡목'이라고 해서 좋지 않은 소리로 친다. 탁하면서도 맑은 맛이 있어야 하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데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거칠고 탁한 소리는 상대적으로 맑고 깨끗한 소리가 있을 때 가치가 있다. 그것은 마치 밝은 대낮이 있음으로 해서 그믐밤의 깊고 그윽함이 더욱 크게 부각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시 너무 맑기만 한 소리는 양성이라고 해서 좋은 소리로 보지 않는다. 이를 그림으로 그려보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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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소리가 기본적으로 거칠고 탁한 소리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판소리는 썩고 병든 소리의 미학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썩고 병들었다는 말은 사실은 적합치 않다. 판소리에서 요구하는 것은 썩고 병든 것이 아니라, 썩고 병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부패로 인한 독소가 전혀 없는 상태, 곧 '발효'와 같은 것이다. 그러한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곰삭은 소리', 곧 충분히 삭은 소리라고 한다.

곰삭은 소리에는 슬픔이 깃들게 된다. 그러나 그 슬픔은 인간을 깜깜한 절망으로 이끌어가는 슬픔도 아니요, 나를 슬프게 만든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그런 분노는 더욱 아니다. 슬픔이면서도 그런 슬픔을 야기한 대상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다 가셔진, 그래서 그러한 상대마저도 이제는 용서하고 마음 깊은 곳에서 함께 껴안을 수 있는 너그러움이 깃든 슬픔이다. 이러한 슬픔이 배인 소리를 판소리에서는 '애원성'이라고 하여, 최상의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식민지 시대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한 임방울의 [쑥대머리]는 바로 이 애원성의 한 극치를 보여준다.

판소리의 변모 과정을 보면, 특히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계면조(슬픈 가락)가 우세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판소리에서 슬픈 소리의 정서적 효과가 지속적으로 증대되어 왔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이다. 다시 말하면 판소리 청중들은 현대에 올수록 슬픈 소리에서 더욱 예술성을 찾게되었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애원성으로만 소리를 한다면 좋은 소리가 될 수 없다. 애원성이 참 맛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씩씩하고 웅장한 우조 성음이 있어야만 한다. 씩씩하고 웅장한 우조 성음과 대조적으로 어울릴 수 있을 때 애원성은 참으로 애원성으로서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판소리에서는 또 낮은 소리를 중요시한다. 사실은 낮은 소리라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판소리 용어로는 무겁다고 한다. 무거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깊은 통찰이 요구되지만, 잠정적으로 말하면 낮음·성량이 큼·느림·굵음 등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판소리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우리 예술에서는 '무겁게' 해야 잘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무겁다'는 말은 '예술적으로 훌륭하다'는 말과 같다. 무겁다는 말이 앞에서 든 것처럼 다양한 내포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음을 강조한 까닭은, 특히 음악의 경우에는 저음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낮은 소리는 그저 낮게만 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량이 커야만 한다. 성량이 크면서도 낮게 소리를 내기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오랜 수련을 통해서만 낮으면서도 실한 소리를 낼 수 있다. 판소리사에서 저음의 매력을 가장 잘 발휘한 사람으로는 일제강점기 5명창의 한 사람으로 일컬어지는 정정렬을 들 수 있다. 정정렬의 소리에 대해 흔히 '도끼로 장작 패는 듯한 소리'라고도 하고, '한 짐 된다'고도 하는데, 이는 정정렬의 소리가 그만큼 실하고, 성량이 크고, 굵은 소리, 곧 무거운 소리였음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판소리 창자 중에는 고음으로 명성을 날린 사람들도 많다. 특히 여성 창자들의 경우에는 고음이 없으면 명창 대접을 받기 힘들다. 여성 창자들은 거칠고 탁한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혹은 그 이상으로 저음도 중요시했다. 남자 창자들의 경우에는 저음의 매력을 상당히 중요시했다. 정정렬 소리에 대한 선호도가 특히 높은 전라도 북부 지역에서는 '무거운 소리'를 중시하는 경향이 유달리 강했다.

판소리의 예술성은 성음의 다양한 변화에서 최고로 발휘된다. 아무리 아름다운 소리 혹은 '목'이라고 하여도, 처음부터 끝까지 변화가 없다면 이는 좋은 소리라고 할 수 없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모습으로 청중에게 제시될 때 참다운 가치가 발휘될 수 있다. 앞에서도 들었지만, 수리성이 좋다고 하여 수리성으로만 소리를 한다든가, 애원성에 대한 청중의 반응이 좋다고 하여 애원성만을 구사한다면 절대로 좋은 소리가 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변화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된다. 장단이나 조(調)·가락·리듬은 말할 것도 없고, '목' 혹은 '목재치'라고 부르는 발성 기교와 이에 따른 음색까지도 포함하는 것이다.

'목'이란 판소리에서 사용하는 다양한 발성 기교를 이르는데, 판소리에서는 창자마다 독특한 자기만의 기교를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이는 대체로 소리를 떨거나 꺾는 방법인데, 구체적인 세부에 있어서는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차이를 보인다. 조사해 놓은 바에 따르면, 40여 가지가 넘는다. 그렇다고 해서 '목'을 다 포괄한 것도 아니다. 판소리에서는 이 목에 따라 개인의 특성이 형성되고, 그에 따른 독특한 예술성이 드러난다. 개인의 특징적인 목을 '표목', 혹은 '표정목'이라고 한다. 음질이 나쁜 음반을 들을 때는 이 표정목을 가지고 창자를 확인하기도 한다.

현대에 오면 명창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에게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을 자주 들을 수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에게 독특한 목을 배워 목이 다양해야 명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현대 최고의 명창이었던 임방울이나 김연수(1907-1974)는 여러 사람에게 배워 다양한 목을 구사할 수 있었기 때문에 대명창으로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목은 개인마다 다르고 종류도 많기 때문에 재미 있는 이름도 많다. '방울목'·'튀는목'·'너는목'·'줍는목'·'펴는목' 등등. 그런데 그 중에서도 아주 아름다운 이름 하나가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전주에 사는 박영선이라고 하는 사람이 한 말이다. 박영선 씨는 젊어서부터 우리 음악을 좋아하여 평생을 그 주변에서 보낸 사람이다. 농악단을 조직해서 공연도 했고, 판소리도 좋아해서 소리꾼과 접촉도 많았던 분이다. 참으로 우리 음악과 예술의 멋을 아는 분이었다. 우도 농악에서는 쇠잽이(꽹과리 치는 사람)를 제외하고는 고깔을 쓰는데, 그 고깔의 꽃들을 조금 늦춰(헐렁하게) 달아야 고개짓을 할 때 꽃들이 낭창낭창허는 모습이 참말로 멋있다고 일러준 분도 그 분이었다. 그런데 어느 해던가 대사습이 열리고 있던 경연장에서 나를 부르더니, "최교수. 이슬털이목이라고 아시오?"하는 것이었다. 이슬털이목이라니, 너무 예쁜 이름이었다. 나는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게 말이요, 신영채(1915-1955?)가 잘 쓰던 목인디, '으 으 으 으으으으으으' 이렇게 허는 것이오."하는 것이었다. 소리를 천천히 단계적으로 위로 올렸다가, 잘게 꺾어 주루룩 내리는 목이었다. "이게 있잖소. 거 여름날 새벽에 논에 갈 때, 나락에 이슬이 잔뜩 맺혀 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바지 가랭이에 걸려서 능청거리다가 이슬이 주루룩 떨어지잖소. 그거, 바로 그것을 흉내낸 목이오. 참 좋은디, 요새는 거, 이런 목을 쓰는 사람이 없단 말여." 그의 얼굴에는 아쉬운 빛이 역력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그 아름다운 이름에 감탄했지만, 다음에는 민중들의 창조의 방식 때문에 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꾼들은 늘 생활 주변에서 아름다움을 찾고, 그것을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 앞에서 든 '방울목'·'튀는목'·'너는목'·'줍는목'·'펴는목' 등등도 그것이 어떤 것이건 간에 민중들의 생활과 활동의 내용이지 않은가. 아마 신영채는 어느 늦은 여름날 새벽, 논길을 가고 있었으리라. 잔뜩 내린 이슬에 바지가랭이를 적시며. 처음에는 짜증이 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자기 바지가랭이에 걸려 능청거리는 벼 잎에서 주루루룩 떨어지는 이슬을 보았을 것이다. 순간 그 아름다움에 도취되고, 그는 그것을 음악으로, 그러니까 '이슬털이목'으로 형상화했으리라. 사실 모든 예술은 이렇듯이 생활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그러기에 서양음악은 서양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며, 당연히 그들의 삶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것을 생활과 문화가 다른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고, 잘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