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판소리가 장단 속에서 어떻게 '소리'로 나타나는가 표를 통해서 한번 보기로 하자.

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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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방울 창 [호남가])

윗 표에서 보듯이 박자는 규칙적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우리가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소리로 부르는 사설 부분일 뿐이다. 사설의 첫째 줄 5, 6박과 11, 12박, 그리고 둘째 줄 10, 11, 12박은 아무 소리도 없이 그냥 흘러가는 곳이다. 그리고 둘째 줄 7박, 9박은 박 수는 한 개이지만, 사설은 두 음절로 되어 있다. 둘째 줄 2박, 3박은 두 박이지만 소리는 하나인데 길게 이어진다. 그러므로 귀로 듣는 소리는 한 개가 된다. 이처럼 귀로 들리는 것과 박의 흐름과는 차이가 난다.

여기서 박자 속에 흘러가는 것으로 상정된 박과 사설이 어떻게 만나는가 하는 것이 문제가 된다. 판소리에서는 박과 사설의 관련 양상을 '부침새'라 한다. '부침새'라는 말은 '붙이다'의 명사형인 '붙임'에 '어떠어떠한 모양'이라는 뜻을 지닌 접미사 '새'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말이다. 이러한 말뜻으로 보면, 부침새란 '박자의 박에 사설의 말을 붙이는 모양'이라는 의미가 된다.

판소리 장단의 부침새는 크게 '대마디 대장단('대머리 대장단'이라고도 함)'과 '엇부침'으로 나눈다. '대마디 대장단'은 장단의 특수한 기법을 쓰지 않은 부침새라고 한다. 그러니까 대마디 대장단은 판소리에서 정상적이다, 혹은 규격에 맞다고 생각하는 부침새인데, 동편제 소리에서 사용하는 전형적인 부침새이다. 한편 '엇부침'이란 '엇'이라는 말에서 드러나는 바와 같이 정상적인 부침새, 곧 대마디 대장단에서 어긋난 부침새를 말한다. 여기서는 이해의 편리를 위하여 엇부침만을 설명하려고 한다. 엇부침을 제외하고 나면, 나머지는 모두 대마디 대장단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엇부침에는 밀부침, 당겨부침, 잉애걸이, 완자걸이, 괴대죽이 있다. 박자는 소리 속에서 반복적으로 흘러가는 것으로 상정된다. 그래서 박자는 음악적 분절(마디)이 된다. 그런가 하면 사설에도 분절이 있다. 작게는 음절에서부터 단어, 구, 절, 문장 등의 분절이 있다. 밀부침과 당겨부침은 음악적 분절인 박자와 사설의 분절인 문장의 구절과의 관련 양상에 관한 것이다. 대마디 대장단이라면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함과 동시에 사설의 구절이 시작되고, 장단의 끝박이 끝나면 사설의 구절도 끝이 나야 한다. 밀부침이란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한 뒤 한 박이나 두 박, 때로는 세 박까지 쉬었다가 사설이 시작하는 것을 가리키며, 당겨부침이란 박자의 첫 박이 시작하기 전에, 그러니까 앞 장단의 끝 부분에서 사설은 다음 구절이 미리 시작하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보자.

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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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첫째 장단과 둘째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이다. 장단이 시작하면서 사설의 구절이 시작되고, 장단이 끝나기 전에 사설의 구절도 끝나기 때문이다. 셋째 장단 앞 부분은 두 박이 쉬고 들어가기 때문에 밀부침에 해당된다. 넷째 장단의 11, 12박의 '한편'은 '한편을 바라보니'라는 구절에 속해 있기 때문에 다섯 째 장단 처음에 나와야 할 것인데, 미리 나왔다. 따라서 이는 당겨부침이다.

잉애걸이는 박이 떨어지고 나서 잠깐 쉬었다가 소리가 나오는 것을 가리킨다. '잉애'는 베틀의 '잉아'로서, 잉아는 북이 지난간 뒤에 상하로 움직이기 때문에 아마도 이에 유추하여 이름을 붙인 듯하다.

자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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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청'은 첫째 박이 시작하고 나서 잠깐 쉬었다가 나온다. 그런데 잠간 쉬었다가 나와도 쉬는 시간이 한 박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한 박을 넘으면 밀부침이 된다. 이와 같은 것을 잉애걸이라고 하며, 서양음악에서 말하는 싱코페이션(synchopation)과 같은 것이다.
완자걸이는 세 박에 걸쳐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3분박으로 된 장단에서 2분박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3분박으로 되는 것을 가리킨다. 완자(卍字)는 그 생김생김이 사이사이로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이에 유추하여 이름을 붙인 것 같다.

엇중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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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희 창 [춘향가])

위에서 '일색 명기' 부분이 완자걸이에 해당된다. '색'이 첫 박 중간에 시작하여 둘째 박 중간까지 계속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완자걸이는 '박 사이사이에 사설이 붙는 현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완자걸이는 서양 음악에서 말하는 헤미올라(hemiola) 현상과 같은데, 이 완자걸이는 몇 번이고 겹쳐 일어날 수도 있다.
괴대죽은 '고양이(괴) 발자국(대죽)'이라는 뜻에서 왔다고 하는데, 고양이가 종종걸음을 치다가 멀리 뛰어가고, 또 종종걸음을 치는 모양과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괴대죽'은 한 장단 이상 사설의 말붙임이 장단의 구속력을 벗어나는 부침새를 가리킨다.

자진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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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진 창 [심청가])

위에서 다섯째 장단의 '아버지' 다음은, '아버지'까지 장단의 구속력을 벗어나지 않고 이어지던 소리가 여섯째 장단까지 길게 이어진다. 마치 종종걸음을 치던 고양이가 길게 훌쩍 뛰는 것과 같다. 이러한 부분이 바로 괴대죽인데, 괴대죽은 판소리의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괴대죽은 엇부침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상적인 부침새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괴대죽은 다른 엇부침과 달리 리듬상의 별다른 변화를 초래하지 않고, 다만 한 음을 길게 빼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둘째 장단은 당겨붙임이고, 넷째, 다섯째, 일곱째 장단은 밀붙임이다. 따라서 이 대목은 상황의 급박함에 맞추어 장단의 부침새 기교도 다양하게 쓰여, 그야말로 호흡이 가쁘다.

이상으로 부침새에 관해서 알아보았다. 장단의 부침새를 익히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장단의 부침새는 판소리의 장단을 알아야 이해할 수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장단을 직접 익혀보는 것이 중요하다. 장단과 부침새를 알고 판소리를 감상하는 것과 모르고 감상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