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임새'는 소리 도중에 발하는 '얼씨구', '좋다', '으이', '그렇지', '아먼(암)' 등의 감탄사를 가리키는데, 판소리뿐만 아니라, 민요·잡가·무가 등 다른 분야의 성악곡에서도 볼 수 있다. 추임새라는 말은 '추어주다'에서 나온 것으로 보이는데, '추어주다'는 '정도 이상으로 칭찬해주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추임새는 뱃속에서부터 올라오는 무게 있는 음성으로, 분위기에 맞게 해야한다. 곧, 소리가 슬플 때는 추임새도 이에 맞춰 어조를 슬프게 해야하며, 즐거운 대목에서는 추임새도 힘차고 흥겨운 어조로 해야한다. 또 소리꾼이 누구든지 간에 '좋지요', '좋습니다'와 같이 존대말을 할 필요는 없다.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추임새는 고수와 청중이 한다. 그러므로 추임새 또한 고수의 추임새와 청중의 추임새 양면에서 알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고수는 한편으로는 소리꾼과 함께 공연자의 입장에 있지만, 한편으로는 또 청중의 입장에도 있다고 할 수 있다. 고수의 기능은 이처럼 복합적인 데서 그 특징을 찾을 수도 있다. 고수가 청중의 입장에서 추임새를 할 수 있는바, 이 때는 청중의 추임새로 설명할 수 있다.
그렇다면 청중의 추임새는 무엇인가. 우선 추임새는 판소리의 개인화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술 작품의 감상은 개인적으로 할 수밖에 없다. 작품의 내용과 개인의 의식이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현상이 감상행위이기 때문이다. 추임새가 나온다는 것은 이미 판소리라는 예술작품과 청중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이다.
추임새는 또 공동체의 집단 즉흥의 현상이다. 판소리 청중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우리 민족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그리고 다수이다. 사람들은 집단으로 있을 때와 개인으로 있을 때는 행동 양식이 다르다고 한다. 군중심리 같은 경우가 좋은 예이다. 그런데 판소리 청중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다. 그리고 그 추임새는 판소리가 불려지는 순간에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다. 곧 즉흥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추임새이다. 똑같은 소리를 듣고, 즉흥적으로 똑같은 행동(추임새)을 하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은 동질성을 느낀다. 이는 마치 우리가 축구 구경을 할 때, 한 마음이 되어서 집단으로 참여하면서 같은 느낌을 주고받는 경우와 같다. 그래서 음악은 운동 경기와 마찬가지로 집단의 단결을 도모하고 동질성을 확인하는 유용한 수단이 된다고 한다.
그러면 청중은 추임새를 통하여 무엇을 표현하는가.
첫째, 감동과 합의의 표현이다. 판소리로부터 전달되는 의미에 대해 감동을 하거나, 판소리에서 주장되는 것에 합의를 할 때 추임새는 튀어나온다. 심청이가 아버지의 눈을 띄우기 위해 물에 빠지는 대목에서 튀어나오는 것과 같은 추임새는 감동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것이며, 토끼가 용왕에게 간을 빼내어 계수나무에다 걸어놓고 왔다고 거짓말을 하여 죽을 고비로부터 벗어나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그러한 사태 전개에 대한 합의로부터 나온다.
둘째, 저항과 화해의 표시이다. 판소리의 내용에는 감동과 합의를 보낼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놀부가 곡식을 얻으러 온 흥보를 두들겨 패는 대목에서 나오는 추임새는 놀부의 행위에 대한 저항감의 표출이다.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한 놀부에게 보내는 추임새는 화해의 표시이다. [적벽가]의 마지막 부분에서, 조조가 살아가게 되었을 때 보내는 추임새 또한, 나라의 질서를 어지럽혔으나 이제 전쟁에 패해 능력을 상실한 간사한 영웅에 대한 화해의 표시이다.
셋째, 추임새는 또 심미적 황홀경(엑스타시)의 표현이다. 예술작품은 미를 감상하는 대상물이다. 훌륭한 미는 인간을 황홀경에 빠지게 한다.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순간적인 황홀경에 빠졌을 때 추임새는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오게 된다.
이렇게 보면 추임새는 참으로 중요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추임새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판소리를 잘 알고, 또 판소리로부터 진정한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 정도면 진정한 청중이 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한 청중을 '귀명창'이라 하여 명창과 대등하게 대우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고수의 추임새는 창자와 같은 공연자로서 하는 추임새이기 때문에, 창자와 함께 어떻게 판소리를 잘 만들어가느냐 하는 데 우선적인 목표가 있게 된다. 그런데, 고수의 기능 중에서 보통은 북가락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북가락보다 추임새가 훨씬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어설픈 가락보다는 멋진 추임새 한 마디가 훨씬 소리판을 생동감 있게 한다. 그러면 고수의 추임새는 어떤 일을 하는가 알아보기로 한다.
첫째, 흥을 돋군다. 고수는 추임새를 함으로써 창자의 흥을 돋구어 주어, 보다 더 나은 소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특히 소리꾼이 장시간 소리를 하느라고 지쳐서 소리가 자꾸 가라앉을 때, 고수의 힘찬 추임새는 창자가 힘을 내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고수의 추임새는 창자의 흥을 돋굴 뿐만 아니라, 청중들의 흥을 돋구기도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소리판이 잘 어울려지도록 한다.
둘째, 소리의 강약을 보좌한다. 소리는 사설 내용이나 상황에 따라 바뀌는데, 추임새도 이에 따라 강한 곳은 강하게, 약한 곳은 약하게 함으로써 소리의 강약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셋째,소리의 공간을 메꾼다. 소리는 가다가 숨을 쉬는 휴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서양음악은 대개 반주가 따르기 때문에, 이런 부분을 반주로 메꾼다. 그러나 판소리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것이 북과 추임새뿐이다. 그래서 이런 휴지 부분이 나오면, 북가락으로 대신 메꾼다든가, 추임새로 대신 빈 공간을 채워 소리가 밋밋하지 않도록 한다.
넷째,북소리를 대신한다. 고수는 북가락을 넣어야 할 때, 이를 생략하고 대신 추임새로 메꿀 수 있다. 특히 북소리를 내는 것이 소리꾼이 소리를 하는 데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소리에 방해가 되는 때는 추임새로 대신하는 것이 훨씬 좋다.
다섯째,상대역의 대사를 대신한다. 고수가 아니리를 할 때는 고수는 추임새로써 이에 응하게 되는데, 이럴 때는 고수의 추임새가 마치 상대역의 대사처럼 쓰이기도 한다. 물론 극히 예외적인 일이기는 하지만, 이 때 간단한 대사를 즉흥적으로 지어내어 하는 경우도 있다. [춘향가] 중에서 어사와 장모가 상면하는 대목 같은 곳에서는, 소리꾼이 "어디를 갔다가 인제 오는가, 이 사람아!"할 때, 고수가 '얼씨구!'라고 추임새로 대답을 대신할 수도 있고, "서울 갔다 오네, 이 사람아."라고 간단한 대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이런 역할을 하는 것은 고수를 상대역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고수가 일단 상대역은 되지만, 고수는 자리를 움직일 수 없고, 추임새 이외의 말은 원칙적으로 할 수 없는 등의 여러 가지 제약이 있기 때문에, 추임새만을 통하여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추임새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물론 좋은 추임새란 상황에 맞는 성음으로 무게 있게 하는 추임새일 것이다. 그러면 어떤 추임새는 하지 말아야 하는가. 좋지 못한 추임새의 예를 들어본다.